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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쓰는 시계 역사 이야기 (1) 쿼츠 파동과 스위스 시계산업의 추락

bbyeyo썩은물·2026.07.20

Watch Groups. 출처:The Watch Collectors' Club A Short Exploration of the World's Largest Watch Groups – The Swiss Giants

현대에 이르러 많은 시계 브랜드가 롤렉스와 같은 독립적인 형태가 아닌, 스와치나 리치몬트와 같은 그룹에 속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 SSIH(Société Suisse pour l'Industrie Horlogère)라는 거대 연합체의 수장격으로서 군림하던 오메가와, 그 오메가에 준하는 기술력과 체급을 지녔던 론진, 등 많은 회사들이 과거의 위상을 잃고 그룹에 속해 포지셔닝의 희생양이 되었는데요. 이는 1960년대 말 일어난 쿼츠 기술혁명이 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쿼츠 혁명, 혹은 쿼츠 파동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세계 시계 시장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세이코를 필두로 한 일본 회사들이 스위스제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민간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도 모자라 스위스 시계 산업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으니까요(Raffaelli,2019). 물론 쿼츠 파동은 스와치라는 거대한 공룡의 등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이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패망 직후, 당연하게도 일본의 산업 기반은 완전히 무너져 기술적인 역량 역시 미국과 스위스 같은 서방 국가들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시계 산업도 마찬가지였으나, 국제무역산업성 (The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시계 경진대회 덕분에 약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전반적인 수준이 크게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Crystal Chronometer. 출처:The Seiko Museum Ginza, Our Challenge to become the Official Timer of the Olympics

세이코의 자회사 스와는 1959년,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시계를 연구하기 위한 팀을 구성합니다. 기계식 시계 엔지니어들 뿐만 아니라 기존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전자 엔지니어를 추가로 채용하죠. 이들 연구진의 목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한 '휴대용' 쿼츠 시계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Donzé,2018). 올림픽에서는 정확한 시간 측정이 요구되는 만큼, 공식 타임키퍼였던 세이코의 기술적 역량이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쿼츠 시계의 소형화에 성공합니다.

Seiko Astron. 출처:Watchonista The History of Quartz Weekend: Part 1 - The Seiko Revolution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들 연구진은 1966년 대형 회중시계의 개발을 성공, 뒤이어 1967년에는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을 최초로 선보입니다. 이후 세이코는 미국 회사 인터실(Intersil)등과 같은 여러 단체와의 기술 협력, 빠른 유통망 확장과 자동화 기술을 통한 대량 생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가격으로 세계 시계 시장을 조금씩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쿼츠 기술과 세이코를 필두로 한 일본 시계 산업은 1980년대에 이르러 스위스의 생산량을 추월하기에 이릅니다. 1980년 당시 쿼츠 시계는 일본 전체 손목시계 생산량 약 6천만개 중 55퍼센트에 달했습니다(The Seiko Museum Ginza,n.d.).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의 피해를 추산해보면, 1980년대 초 수출량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1970년대 중반 대비 절반도 안 되는 수치였습니다. 50%를 넘던 스위스 시계의 전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역시 약 10년 만에 30% 미만으로 급감했을 뿐더러 이로 인해 시계 산업 일자리의 3분의 2가량이 사라졌습니다(Perret,2008). 스위스 시계 제조 업체의 절반 이상이 줄줄이 파산했고(Rafaelli,2019), 시계 산업의 근거지였던 지역들에서는 크고 급격한 인구 유출마저 초래했으며, 장기적인 지역 발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Twinam,2020).

Beta-21 Movement. 출처:Hodinkee, Collecting The First Swiss Quartz Movement: 5 Beta-21 Watches To Look For

사실 스위스 기업들이 급격한 시대의 변화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메가나 부로바 등의 기업들도 아스트론의 출시 이듬해 스위스제 쿼츠 시계들을 내놓았거든요. CEH(Centre Electronique Horloger, 스위스 전자시계센터)의 Beta 21 프로젝트 등을 고려해보면, 스위스 시계 산업의 쿼츠 기술 역량이 절대 일본에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논문에서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추락이 대공황 시절부터 이어져 온 "카르텔" 형식의 산업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고 있습니다(Courvoisier,2019). 스위스 정부가 공표한 Statut Horloger(Watchmaking Statute, 시계 제작 법령)은 에보슈, 즉 무브먼트 공급망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ASUAG와 SSIH와 같은 기업 연합체를 만들어 대공황으로부터 시계 산업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시계 제작을 분업화하여 여러 중소 업체들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수직적인 공정으로 대량 생산에 특화된 세이코와는 다르게, 쿼츠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된 거죠.

Nicolas Hayek. 출처: Hodinkee, Editorial: That Time I Wrote That 'Swatch Group' Was A Dumb Name, And What Happened Next

이렇게 사실상 파산 직전에 내몰린 스위스 시계 산업에 한 남자가 구원의 손을 내밀게 되는데...

Reference

Courvoisier, F. H. (2019, June). Creative Swiss watchmaking: A mix of art, industry and marketing [Paper presentation]. 15ème Conférence internationale du management des arts et de la culture, Venice, Italy. P.3

Donzé, P.-Y. (2018, August 6). The history of quartz weekend: Part 1 - The Seiko revolution. Watchonista. https://www.watchonista.com/articles/history/history-quartz-weekend-part-1-seiko-revolution

Perret, T. 2008. A canton under the influence. In J. Bujard & L. Tissot (Eds.), The territory of Neuchatel and its horological heritage. Editions de la Chatiere.

Raffaelli, R. 2019. Technology Reemergence: Creating New Value for Old Technologies in Swiss Mechanical Watchmaking, 1970–2008.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Twinam, T., 2020. Trade Shocks and Growth: The Impact of the Quartz Crisis in Switzerland (No. twscm). Center for Open Science.

The Seiko Museum Ginza. The Quartz Crisis and Recovery of Swiss Watches. [Online]. [Accessed 15 July 2026]. Available from: https://museum.seiko.co.jp/en/knowledge/relation_11/

본 글은 전문성을 띈 논문이나 잡지 등이 아니므로, 일부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